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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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먹다 2020. 5. 29. 03:54
김밥이 좋다. 짭짤한 속 재료와 새콤달콤한 밥을 바다의 향기가 나는 김이 동그랗게 감싸고 있다. 참기름을 먹기 위해 김밥을 말기라도 하는 것처럼 충분히 바르면 씹는 동안 고소한 향이 콧등에 머무르니 황홀한 기분이 든다. 사 먹기만 하다가 시집와서야 잔반처리를 위해 김밥을 만들게 되는데 밥을 일정한 두께로 깔거나 밥의 끝과 끝이 만나도록 반듯한 김밥을 만드는 것, 여밈이 풀리지 않게 썰어내는 것이 꽤 고난도의 기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야채를 볶다가, 잘 썰어보려고 칼을 갈다가, 문득문득 뷔페에서 김밥을 지나치지 못하고 꼭 접시에 옮겨 담아오던 일, 김밥이나 먹을까?라는 질문을 들으면 간단히 때우자는 질문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마음이 든든해지던 일 등 사소한 추억들이 떠오른다. 오늘의 김밥은 밥 위에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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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갈레뜨먹다 2019. 12. 1. 11:21
오븐을 사용하는 날은 난방을 켜지 않아도 집안 공기가 후끈 달아올라 좋다 예열할 때부터 동화 속 가정집처럼 훈훈한 기운이 감돈다 혼자서는 두 번째 만들어보는 파이 경험이 없는 만큼 익숙한 요리를 할 때보다 긴장하게 된다 지난번 만들었을 때보다 파이지의 느낌이 레시피 설명과 맞아떨어져서 잘 밀었다고 생각했는데 중간에 오븐을 열어보니 아무래도 밑에 구멍이 났나 보다 설탕물이 새어 나와 시커먼 캐러멜이 되어있다 달콤한 냄새가 온 집안을 뒤덮는 동안 설거지를 하고 무엇을 보며, 들으며 파이를 먹을까 오븐을 기웃거릴 때 어린아이처럼 들뜨는 마음이 재밌다 알람이 울리기를 기다리면서 샤워를 하는 동안에는 왠지 급한 동작들 시간 여유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머릿속에 오븐처럼 파이가 들어차 있다 창문을 열고 파이에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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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무 김치먹다 2019. 11. 19. 04:55
순무는 물에 한 번 헹구어 뿌리로부터 청을 잘라냅니다. 청을 뿌리에 약간 남겨둘 때 그 모양새가 머리를 짧게 자른 아이처럼 참 귀엽고 보기 좋습니다. 자른 청은 식촛물에 잠깐 담가 둡니다. 그동안 채소를 닦는 솔로 뿌리를 살살 문질러가며 흐르는 물에 흙과 먼지를 씻어냅니다. 깨끗하게 손질된 뿌리는 먹기 좋게 반 혹은 반의 반 크기로 자릅니다. 그것을 굵은소금 한 줌과 버무리듯 섞어줍니다. 뿌리가 무르는 동안 식촛물에 담가 둔 청을 다시 시원한 물로 헹구어 건조합니다. 청은 물김치로 뿌리는 깍두기처럼 만들 겁니다. 절구에 깐 마늘을 작게 조각내어 넣습니다. 생강은 손가락 한 마디보다 작게 넣어줍니다. 정성스럽게 빻습니다. 완전히 바스러지지 않아도 됩니다. 크기가 조금씩 다른 마늘 조각이 주는 향과 맛도 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