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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앉는 자리에 찻상을 차린다
고심해서 고른 도구들이 오밀조밀하게 놓인다
이날 이 시점에 어울리는 차를 고르고 음악을 튼다
다기 한 번 나 한 번 번갈아 적시면서
스피커를 통해 집안을 울리는 음악 소리
찻물의 경쾌하고 맑은 화음, 가벼운 부딪힘,
바깥으로부터 새어 들어온 안개 같은 소리들을 듣는다
바람이 솔솔 오른 팔꿈치를 빗질한다
결이 곱고 향기로운 것들을 떠올린다
진정한 겸손은 황금의 칼날처럼 강인하다
요즘은 그런 말에 끌린다
자로 재듯 그 말의 눈금 어딘가에 내가 닿는가 재어보고
나이 든다는 것은 옅어지는 찻물과 같은 것일까
센 불에 단련되어 내 찻자리를 돕는 이 잔과 같아지는 것일까
둘 다 아니어도 좋다, 둘 다여도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뜨끈한 찻물을 속에 끼얹는다
설거지도 해야 하고 저녁도 차려야 하지만
지금은 한 잔 두 잔 차를 마시고
이런저런 생각이 바람처럼 나를 훑고 가게끔 둔다
누가 걸어오는 말을 놓침 없이 들으려는 사람처럼
귀를 기울이고 가만히 기다린다
설렘으로 주전자를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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