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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머튼, 고독에 대하여쓰다 2019. 12. 27. 03:52
True solitude is found in humility, which is infinitely rich. False solitude is the refuge of pride, and it is infinitely poor. The poverty of false solitude comes from an illusion which pretends, by adorning itself in things it can never possess, to distinguish one individual self from the mass of other men. True solitude is selfless. Therefore, it is rich in silence and charity and peace. It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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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쓰다 2019. 12. 25. 14:51
사랑하려고 안간힘 쓰다 깨달은 것이 있다면 그조차 내 의지와 노력으로 못하는 마음의 연약함, 사랑도 능력이라 보는 미련함 사랑을 하려면 자신을 천 번 만 번 죽여야 한다는 것 보상의 부재 속에서도 오뚝이처럼 절망과 허무를 차고 일어나야 한다는 것 천 번 만 번이고 이를 악물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 그 지옥 같은 반복과정까지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 옆집으로부터 익숙한 크리스마스 캐럴 멜로디와 선물이 궁금해서 잠들 수 없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가 가장 크게 들리는 부분에 기대앉아 이 글을 적는 지금 두 공간 사이 벽에 성에라도 낄 듯 대조되는 분위기에 생각이 날카로워진다 오늘은 내가 사랑하고 섬겨야 할 사람들과 그것을 잘 해내지 못하는 나를 위해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낮은 곳으로 내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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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침쓰다 2019. 12. 20. 07:23
며칠 비가 종일 내렸다 새벽에 잠 못 이룬 대신 늦잠을 잤다 환한 빛이 방안을 밝히고 있었다 블라인드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밖으로 나갔는데 한 여름이면 어떨까 12월 중순이면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날씨가 좋다는 것은 사실 내다보지 않아도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알 수 있다 축축한 날 하지 못했던 공사를 마무리하는 기계음에 불규칙하게 끼어드는 둔탁한 망치질 소리 운전하면서 듣는 빠른 음악 한 소절 크게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아이들 목소리가 오늘은 날씨가 좋다고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빛은 사물과 인간 안팎의 톤을 조절하는 장치인 듯하다 명도가 소리와 생김새와 생각을 좌우한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참 좋은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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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향목쓰다 2019. 12. 10. 11:01
매일 앉는 자리에 찻상을 차린다 고심해서 고른 도구들이 오밀조밀하게 놓인다 이날 이 시점에 어울리는 차를 고르고 음악을 튼다 다기 한 번 나 한 번 번갈아 적시면서 스피커를 통해 집안을 울리는 음악 소리 찻물의 경쾌하고 맑은 화음, 가벼운 부딪힘, 바깥으로부터 새어 들어온 안개 같은 소리들을 듣는다 바람이 솔솔 오른 팔꿈치를 빗질한다 결이 곱고 향기로운 것들을 떠올린다 진정한 겸손은 황금의 칼날처럼 강인하다 요즘은 그런 말에 끌린다 자로 재듯 그 말의 눈금 어딘가에 내가 닿는가 재어보고 나이 든다는 것은 옅어지는 찻물과 같은 것일까 센 불에 단련되어 내 찻자리를 돕는 이 잔과 같아지는 것일까 둘 다 아니어도 좋다, 둘 다여도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뜨끈한 찻물을 속에 끼얹는다 설거지도 해야 하고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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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 중심, 한계쓰다 2019. 12. 6. 05:29
빚고 짓고 칠하고 쓰고 각자의 세계관과 삶에 대한 감상을 오감으로 확인하고 위로하고 싶은 사람의 마음 결과물은 있다가도 금방 사라지고 기억에서 잊히지만 그것이 하늘의 뜻이고 짓고 빚는 자의 사명이므로 결과를 위해서가 아닌 그 소명에 순응하기 위해 그 일을 한다 뜻이 보다 훌륭하고 아름답게 구현되도록 정신을 가다듬고 기술을 발전시킨다 소명의 본질로 더 들어가려는 노력인 것이다 그런 중심을 우선시하며 살고 싶다 부산물은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기에 곁눈질을 하게 되는 것이 내 인간다움인 줄을 이해하고 따라오면 오는 대로 조금 초연하게 생각할 수 있길 바란다 물질에 대한 욕심은 이 세상에 내 것이 하나도 없음을 이미 아는 무의식 속 불안의 징표인 듯하다 불안에 먹잇감을 제공할수록 불안의 크기가 자란다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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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갈레뜨먹다 2019. 12. 1. 11:21
오븐을 사용하는 날은 난방을 켜지 않아도 집안 공기가 후끈 달아올라 좋다 예열할 때부터 동화 속 가정집처럼 훈훈한 기운이 감돈다 혼자서는 두 번째 만들어보는 파이 경험이 없는 만큼 익숙한 요리를 할 때보다 긴장하게 된다 지난번 만들었을 때보다 파이지의 느낌이 레시피 설명과 맞아떨어져서 잘 밀었다고 생각했는데 중간에 오븐을 열어보니 아무래도 밑에 구멍이 났나 보다 설탕물이 새어 나와 시커먼 캐러멜이 되어있다 달콤한 냄새가 온 집안을 뒤덮는 동안 설거지를 하고 무엇을 보며, 들으며 파이를 먹을까 오븐을 기웃거릴 때 어린아이처럼 들뜨는 마음이 재밌다 알람이 울리기를 기다리면서 샤워를 하는 동안에는 왠지 급한 동작들 시간 여유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머릿속에 오븐처럼 파이가 들어차 있다 창문을 열고 파이에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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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 원짜리 자유쓰다 2019. 12. 1. 03:04
좋은 시가 의식하는 것은 사람 사는 모습 즉, 우주와 만물의 생김새, 존재 의미 성찰,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한 기록이다 자아의 욕망 성취가 이보다 더 큰 목적일 때 그 독백은 시의 소명을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이제 좀 힘을 뺄 수 있을까? 오백 원짜리를 손에 들고 그 가치를 몰라 백 원짜리 동전을 달라고 보채는 아이가 내 안에 있다 그 애를 잘 달래고 가르쳐서 지어진 대로 자라도록 도와야지 구박하면 그것도 내 뜻이 세워질 일 아는가, 아무것도 아닌 자의 기쁨과 자유를 오백 원짜리 자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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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지어진 세계쓰다 2019. 11. 24. 00:06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이 세상이 폭력 아닌 사랑으로 생겨났음을 믿는 것이다 만일 우리들이 우연한 폭발의 산물이라면 우리는 서로를 사랑해야 할 이유가 없다 강한 자는 죄책감 없이 약탈하고 배를 불리면 된다 하지만 그 말만으로도 우리는 가슴에 욱하고 올라오는 정의와 연민에 마음이 흔들린다 즉 하나님의 세계는 정의와 공감과 인정과 용서와 희생같은 선의 세계로 선을 지지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며 그의 필요를 절실히 아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닌 것은 훈련과 애정, 지성을 통해 자아와 현실을 일시적으로 다스릴 힘을 줄 수 있지만 그 한계는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경험해봤을 것이다 우리의 본능은 이처럼 하나님을 찾는다 그 분을 닮음이 우리 영혼에 내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