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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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을 보내며쓰다 2019. 11. 17. 14:46
육수가 끓기를 기다리면서 어젯밤 보았던 내 어린 시절 서울에 두고 온 가족들 지난 삼 주간 배운 것 앞으로 연말까지의 짧은 시간을 어떻게 쓸까 생각했다 묵은 찻잎을 우리는 것이 마른 채소와 생선을 넣고 육수를 내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도 생각했다 먹고 마시는 일을 신중하게 하면서 서두르지 않는 연말을 보내고 싶다 한 해 동안 쏟아져내린 축복과 새 생명을 얻음에 잠잠히 고개를 숙이며 고마운 마음으로 새로운 한 해를 맞아야지 이천십구 년의 시작이 현재를 예고하지 못했듯이 그다음 해도 운전대에 가볍게 손만 얹고 최선의 것을 살아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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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계절쓰다 2019. 11. 17. 11:53
가을의 정점, 겨울의 초입에서 한 해를 살아내고 달게 익은 열매와 때를 알고 낙하하며 부숴지는 것들을 본다. 삶의 비밀이 드러나고 오해들을 바로 잡아야 하기에 느끼고 생각하는 것에 갑절 이상의 마음을 쓴다. 오로지 나 자신이 삶의 중심이며 주인이었을 때의 거센 갈등과, 죽음을 통해 스스로를 구원하려 했던 일 인간이라는 운명과 우주의 다반사를 내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처절한 무력감, 패배적인 자아. 지푸라기같이 나약하고 나처럼 무력한 동지에게 모든 정성과 시간을 들였던 일. 그것에서 오는 배반과 외로움. 이런 것들을 먼지를 닦고 보듬듯이 천천히 들추어보고 다그치며 위로한다. 무겁지만 절대적이고 그 자체로 빛이 나는 소망을 느낀다. 새로운 계절을 기다린다. 그곳에 쏟아질 사랑과 영화로운 생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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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에서쓰다 2019. 11. 17. 11:25
구수하고 찝찌름한 된장 국물 숨 죽은 나물에 비벼진 밥알을 씹는다 청록색의 짙은 천 자락 주름처럼 느긋하고 품위 있는 능선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서 김치 한 조각 국물 한 술 떠 넣는다 위에서 바라보면 힘 있게 휘어진 강줄기도 눈높이를 같이 하니 산을 마주할 때 위엄이 느껴지는 마음에 작은 무게와 다정한 안심을 준다 고개를 들면 반은 산 반은 하늘인 것을 답답해하지 않고 산에 있는 풀을 뜯어다가 먹을거리 삼은 과거의 정신이 어린 속에 뭉쳐진 것을 개운하게 부드럽게 녹인다 자연의 품에 연못처럼 안긴 마을과 천지의 균형에 입을 벌린다